2016년 2월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운영 과정에서 북한에 제공되는 자금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된다는 이유로, 개성공단을 전격적으로 폐쇄했습니다. 당시 개성공단 폐쇄조치에 대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논란이 있었는데,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회에 출석하여 "(이번 조치는) 긴급명령으로 한 게 아니라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으로 한 것"이라며 "다른 법을 이 행위에 적용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황교안 국무총리의 말은 이른바 ‘통치행위’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1. 통치행위의 의의
우리나라는 3권 분립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으로 나누는 3권 분립인데, 사법부의 역할은 특정한 문제가 생겼을 때 이게 법적으로 적법하지 그렇지 않은 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만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도 법의 지배를 받습니다. 행정주체 또는 행정청이 행정작용을 하면 이에 대해서 사법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행정청의 행정행위가 적법한지, 아니면 위법한지를 따지는 것이 행정법의 주된 역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특정한 분야에 대해서는 사법부가 판단을 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게 바로 통치행위입니다. 통치행위는 “고도의 정치성을 가지는 국가기관의 행위로서, 법적 구속을 받지 않으며 법원의 사법심사가 제한되는 행위”를 말합니다. 주로 대통령의 외교∙군사에 관한 행위, 사면권, 긴급명령 또는 긴급재정 등 주로 정치적으로 논쟁이 심한 문제에 대해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 통치행위의 인정여부
통치행위를 인정할 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법치주의에 대한 예외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근거로 통치행위를 부정하는 견해도 있지만, 대체로 긍정하는 견해가 다수설입니다. 판례도 기본적으로 통치행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대체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과 국회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고, 그래서 사법심사가 제한되어야 한다는 이른바 사법자제설을 취하고 있습니다. 판단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지만, 가급적 참겠다는 입장입니다.
○ 헌재 2004. 4. 29. 2003헌마814
이 사건 파견결정은 그 성격상 국방 및 외교에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문제로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켜 이루어진 것임이 명백하므로, 대통령과 국회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고 헌법재판소가 사법적 기준만으로 이를 심판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는 설혹 사법적 심사의 회피로 자의적 결정이 방치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러한 대통령과 국회의 판단은 궁극적으로는 선거를 통해 국민에 의한 평가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특정한 행위를 통치행위로 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이건 사법심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그 행위가 적법한지 위법한지를 따지지 않겠다는 겁니다. 앞서 언급한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문제된 이라크 파병 사건을 통해서 그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2003년 10월 참여정부가 대한민국 국군을 이라크에 파견하기로 하자, 이 모씨는 이 파병 결정이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5조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습니다.
헌법적인 문제가 제기되면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합치되는 지, 아니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 지를 가리는데 이 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이 문제를 가리지 않겠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법 위반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따지는 건 적절하지 않으므로 아예 판단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겁니다.
3. 구체적인 예
통치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안에서 판례가 통치행위로 인정하여 사법심사를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통치행위로 보지 않아 사법심사를 하였는지를 구분하는 것이고, 실제 문제도 판례의 입장을 물어보는 것이 주로 출제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판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대법원 판례
남북정상회담 개최 자체가 문제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자체에 대해서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가지는 행위로 보아 사법심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의 개최과정에서 북한 측에 사업권의 대가 명목으로 송금을 한 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았으므로 유의해야 합니다.(2003도7878)
5•18내란이 문제된 사안에서,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지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96도3376)
(2)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기본적으로 통치행위의 개념을 인정하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침해와 직접 관련된 경우에는 헌법재판소가 심판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93헌마186)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가 보면, 앞서 통치행위의 인정여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이툰부대의 이라크 파병결정에 대해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문제라고 보아 사법심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2003헌마814).
신행정수도건설이나 수도이전의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문제라는 이유로 사법심사를 하고 있습니다(2004헌마554).
또한 대통령의 금융실명제에 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에 대해서도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 있다는 이유로 심판의 대상으로 삼아 사법심사를 하고 있습니다(93헌마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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