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법을 비롯한 법학을 공부하다보면 "사실심 변론종결시"라는 용어를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소송 분야에서는 사실심 변론종결시가 흔하게 등장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사실심 변론종결시가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 사실심 변론종결시의 뜻
사실심 변론종결시는 "사실심"과 "변론종결시"를 합친 개념으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사실심의 변론이 종결된 시점"을 말합니다. 즉, 사실심 변론종결시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사실심"의 뜻과 "변론종결"의 뜻을 이해하면 됩니다.
2. 사실심이란?
가. 사실판단과 법률판단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은 두 단계를 거쳐서 판결을 하는데, 첫 번째는 사실관계 판단이고, 두 번째는 법률적인 판단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A가 B에게 “빌려 간 1,000만 원을 돌려 달라.”면서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B는 “A에게 돈을 빌린 적이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재판에서 쟁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A가 B에게 돈을 줬는가?”하는 점입니다. 이처럼 일어난 사실 자체를 규명하는 일을 “사실관계 판단”이라 합니다.
두 번째, (만약 A가 돈을 줬다는 게 밝혀진 경우) "그 돈의 성격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입니다.. 돈을 그냥 준 것이라면 “증여”가 되겠지만, 빌려줬다면 “대여”입니다. 이렇게 법리를 적용해서 결론을 내리는 걸 “법률적인 판단”이라고 합니다.
나. 사실심과 법률심의 구별
보통의 법원은 사실관계 판단과 법리판단을 모두 하는데, 이러한 법원(예: 지방법원, 고등법원)을 “사실심(事實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통의 법원과 달리 대법원은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은 독자적으로 하지 않은 채 법률적인 부분만 판단만을 합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법률심(法律審)”이라고 부릅니다.
사실심이라고 해서 사실판단만 하고 법률판단은 하지 않는다고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법률심과 구별하기 위해 사실심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법원은 당연히 법률적인 판단을 합니다.
사실심 | 법률심 | |
사실관계 판단 | O | X |
법률적인 판단 | O | O |
대법원은 왜 사실판단을 하지 않고, 법률적인 판단만 하는 걸까요?
그건 대법원이 사실판단까지 하기에는 너무 바쁘기 때문입니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려면 증인도 불러서 증인신문도 하고 당사자들이 말하는 사실이 맞는지 검증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는 대법원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법원은 하나이고 대법관도 수도 많지 않은데, 사실관계 판단까지 하려면 사건을 제때 처리하기 힘듭니다.
대법원에 접수되는 연간 본안사건 수는 2018년 기준 4만 7,979건에 이른다고 합니다. 대법관 1명이 1년에 담당하는 사건 수는 4,000건에 달합니다. 1년 내내 쉬지 않고 일해도 하루 11건 꼴로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겁니다. 법률적인 판단만 해도도 바쁜데 사실관계 판단까지 한다면 대법원은 업무가 마비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대법원은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독자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사실심이 정리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법률적인 판단만 하는 겁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1심(예: 지방법원, 행정법원)과 2심(예: 고등법원)은 “사실심”이고, 3심인 대법원은 “법률심”이라고 이해하면 편합니다.
3. 변론종결이란?
가. 일반적인 소송 절차
일반적인 소송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고의 “소장” 제출 → 피고의 “답변서” 제출 → 원고와 피고의 “준비서면” 제출 → 변론기일(증인신문, 검증, 사실조회 등의 변론 진행) → 변론종결 → 판결선고
(1) 원고의 소장 제출 및 피고의 답변서 제출
소송은 원고가 소장을 제출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원고는 자신의 주장을 법률적으로 정리한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고, 법원은 이 소장을 소송을 당한 피고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면 피고는 원고의 주장을 담은 “답변서”를 제출합니다.
(2) 준비서면을 통한 공방
소장과 답변서를 주고 받으면 원고와 피고는 상대방의 주장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피고가 답변서로 원고의 주장을 반박하면 원고는 피고의 주장을 다시 반박하는 서면을 제출하는데, 이러한 서면을 준비서면(準備書面)이라고 부릅니다. 원고가 준비서면을 제출하면 피고도 준비서면을 제출하여 서면을 통한 공방을 벌입니다.
(3) 변론기일
소장, 답변서, 준비서면을 통해 서면공방을 몇 번 하고 나면, 이 소송의 쟁점이 무엇인지, 각자는 무엇을 주장하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러면 법원은 변론기일(辯論期日)을 지정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변론준비기일”을 지정하기도 하는데, 실무적으로 변론준비기일과 변론기일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변론기일은 쉽게 말하면 직접 법정에 출석하는 “재판일”입니다. 변론기일에 판사는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물어보기도 하고, 앞으로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를 정합니다. 변론기일은 보통 1~2개월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진행됩니다.
(4) 변론종결
"나. 변론종결"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5) 판결선고
변론종결 후 일정한 기간(통상적으로 약 1개월) 뒤에 판결이 선고됩니다.
변론종결 후 판결선고 전까지 판사는 뭘 할까요? 판사는 기존에 제출된 양 당사자의 서면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사실관계를 정리합니다. 법리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판례나 책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결론이 나면 판결문도 작성해야 하죠.
나. 변론종결
각각의 쟁점에 대해 쌍방의 주장이 어느 정도 다 나오고 나면 법원은 변론종결(辯論終結)을 선언합니다. 변론이 종결된다는 건 양 당사자가 충분히 공방을 벌여 법원이 “이 정도면 결론을 내려도 되겠다”라는 판단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변론종결은 “문을 닫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변론종결 전까지는 원고와 피고가 각자 하고 싶은 주장을 맘대로 할 수 있지만, 변론종결 이후에는 새로운 주장을 할 수 없죠. 변론종결 이후에는 당사자가 준비서면을 제출하여 주장을 하더라도 재판결과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러한 자료를 재판결과에 반영시키기 위해서는 변론 재개를 신청하여 변론기일을 다시 잡아야 합니다.
4. 사실심 변론종결시가 주로 문제되는 경우
행정법에서 사실심 변론종결시가 주로 문제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피고경정
피고를 바꾸는 걸 피고경정((被告更正)이라고 하는데, 피고경정은 “사실심 변론종결시”까지 허용되고, 그 이후에는 피고를 바꿀 수 없습니다.
나. 필요적 행정심판전치주의
행정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반드시 행정심판을 먼저 거쳐야 하는 예외적인 상황을 필요적 행정심판전치주의라고 하는데요, 필요적 행정심판전치주의가 적용되는 경우에, 취소소송 제기 당시에는 행정심판을 거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실심 변론종결시까지 행정심판을 거친 경우에는 하자가 치유됩니다.
다. 처분사유의 추가, 변경
처분사유의 추가, 변경은 처분사유를 새롭게 추가하거나 다른 사유로 바꾸는 걸 말합니다. 처분사유의 추가·변경도 “사실심 변론종결시”까지만 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처분사유를 추가하거나 변경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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