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에 일어난 12∙12 쿠데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세력은 쿠데타로 집권한 뒤, 장기간 호의호식하면서 막강한 권세를 누렸습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과연 그럴까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법원 판결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 관련 유튜브 영상 바로보기(아래 이미지 클릭)
1. 법정에 선 두 전직 대통령
1996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나란히 법정에 섰습니다. 두 사람 모두 피고인 신분이었습니다. 두 사람 외에도 유학성, 황영시, 장세동, 허화평, 허삼수, 이희성 등 이른바 신군부 세력도 같이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명은 반란수괴, 상관살해, 뇌물 등인데, 핵심은 군형법상 반란죄입니다.
전두환 세력이 일으킨 12∙12가 반란죄에 해당하는지가 재판의 핵심적인 쟁점이었습니다.
2.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체포
12∙12 쿠데타의 시작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정승화 총장은 계엄사령관을 겸하고 있었는데, 그는 육사 출신을 멀리하고 군의 정치개입에 반대했습니다.
전두환 세력은 정승화 총장을 제거하고 군의 실권을 장악하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전두환의 최측근인 허삼수는 무장병력을 총장 공관 주변에 배치하고, 정 총장을 강제로 끌고 나와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하였습니다.
신군부가 정승화 총장을 체포하면서 내세운 이유는, 정 총장이 김재규의 박 전 대통령 살해 사건을 방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핑계일 뿐이었죠.
정 총장이 10∙26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건 신군부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전두환 세력이 정 총장을 체포한 건 군의 지휘권을 장악하고 반대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정승화 총장 체포는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전두환은 최규하 전 대통령의 재가 없이 정 총장을 체포했습니다. 최규화 대통령은 체포 다음날인 12월 13일 오전 5시경에 정 총장 체포를 사후적으로 재가하긴 했습니다.
전두환은 늦게라도 대통령이 재가를 했으니 괜찮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정 총장을 체포하고 병력을 마음대로 동원한 행위가 이미 반란행위인데, 뒤늦게 대통령의 사후 승낙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반란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라고 본 겁니다.
또한 법원은 전두환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과정이 매우 강압적이었다고 봤습니다. 당시 전두환은 청와대 경비를 담당하는 부대를 이끌고 대통령이 있던 국무총리 공관으로 가서 대통령 경호인력을 무장해제시키고 막사에 억류했습니다. 또한 다수의 병력으로 국무총리 공관을 점거 및 포위했습니다.
육군중장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등 여러 장성들과 함께 늦은 시각에 대통령을 방문한 전두환은 공관에 1시간이 넘도록 머물면서 정 총장 체포에 대한 재가를 거듭 요구하였습니다. 당시 최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이처럼 강압적인 상황에서 최규하 대통령은 정 총장 체포에 대해 사후적으로 재가를 한 겁니다.
3. 혁명? 성공한 쿠데타?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은 이런 말을 합니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니겠습니까?”
실제로도 전두환 세력은 12∙12를 혁명이라고 불렀지만, 법원은 12∙12를 쿠데타로 규정했습니다. 혁명과 쿠데타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요?
법원이 제시한 기준은 이렇습니다.
혁명은 현존하는 정치제도의 급격한 파괴와 새로운 기초에 바탕을 둔 신제도의 수립이 본질적 요소입니다.
이에 반해 쿠데타는 권력이 특정인에게서 다른 특정인에게로 이전되는 것이고, 국민에 대한 영향은 최소한에 그치는 특징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힘으로 강압하여 권력을 인수하는 게 쿠데타입니다.
법원이 보기에 신군부가 일으킨 12∙12는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입니다.
전두환은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12∙12가 설령 쿠데타라고 하더라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확실히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헌법을 개정하여 구법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법질서를 만들었으니, 새로운 법질서 아래에서는 쿠데타를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쉽게 말해, 이미 세상이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법원은 전두환의 주장이 틀렸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정 초기부터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의 근본이념으로 삼아왔습니다. 그런데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뒤 헌법을 개정했다고 해서, 새로운 법질서가 수립된 건 아니라고 봤습니다. 우리나라의 헌법 질서 아래에서는 헌법이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폭력으로 정권을 장악하는 건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법원은 전두환 세력이 군형법상 반란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여, 주동자인 전두환에게는 무기징역, 2인자인 노태우에게는 징역 17년을 선고했습니다.
4. 요약 및 정리
신군부는 12∙12 사건을 혁명이라고 주장하지만, 법원은 12∙12가 쿠데타, 즉 군사반란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한 건 실질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불법이고, 대통령의 사후 재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불법체포인 건 변함없습니다.
또한 폭력적인 방식으로 정권을 장악하는 건 우리 헌법질서상 허용되지 않으니 성공한 쿠데타라고 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다는 게 법원의 판결입니다.
※ 주요 참고자료
- 대법원 판결(96도3376)
- 서울고등법원 판결(96노1892 판결)
- KBS 역사저널 그날(2021.01.26)
- MBC 뉴스데스크(1995.12.12)
'연예가 법정 > TV 보는 법(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물의 여왕 속 치명적 옥에 티 (0) | 2024.05.15 |
---|---|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차이 (0) | 2023.12.18 |
"천원짜리 변호사"에 숨어 있는 옥에 티 (0) | 2023.06.02 |
[재소자 수의착용]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복을 입을 수 있는 이유 (0) | 2017.06.11 |
[개인정보] 홈플러스 1mm 경품 응모권 사건 (0) | 2017.06.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