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훈 변호사는 승률 100%를 자랑하는 굉장히 실력이 뛰어난 변호사입니다.
그런데, 수임료는 단돈 1,000원! 그래서 “천원짜리 변호사”이죠.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는 천지훈 변호사가 어려운 처지의 의뢰인을 도와 사건을 하나씩 해결하는 법정 드라마입니다.
남궁민 배우의 열연과 인상적인 이야기 전개로 인기가 꽤 높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법정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이 드라마에도 이상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법정 드라마에 꼭 등장하지만 현실과는 다른 게 뭔지, 지금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1. 드라마 속으로: “천원짜리 변호사 제3회”
차명그룹 전무인 천영배는 갑질의 대명사입니다.
행동이 아주 거칠고 주변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한마디로 개차반이죠.
천영배 전무를 참교육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은 천지훈 변호사는 차명그룹의 모태용 회장에게 천영배 전무의 갑질을 폭로합니다.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고 천 전무를 해고하라고 요구하죠.
모태용 회장이 천지훈 변호사의 요구를 거절하자 천 변호사는 모태용 회장이 좋아하는 빙고 게임을 제안합니다.
빙고를 해서 천 변호사가 이기면 그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겠다고 모 회장은 말합니다.
물론 모 회장이 이기면 천 변호사는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기로 하죠.
그렇게 해서 빙고게임이 시작됩니다.
게임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백마리 변호사와 모태용 회장이 돌아가면서 숫자를 하나씩 부르고 먼저 빙고를 완성하는 쪽이 승리하는 것이죠.
게임은 천지훈 변호사에게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백마리 변호사가 번호를 제대로 부르지 않으면 게임에서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천지훈 변호사.
여기서 천 변호사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바로 모 회장에게 티 나지 않도록 백마리 변호사에게 힌트를 주는 것이죠.
천지훈 변호사는 천영배 전무에게 훈계를 하는 척하면서 법조항을 넌지시 백마리 변호사에게 알려줍니다.
다행히 백마리 변호사는 힌트를 찰떡같이 알아들어 정확한 숫자를 부르고, 결국 천지훈 변호사가 게임에서 승리합니다.
2. 옥에 티
가. 이상한 점
“천원짜리 변호사” 제3화의 빙고 게임 장면은 법조문을 이용해서 숫자에 관한 힌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천지훈 변호사가 빙고 게임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천 변호사와 백 변호사가 법률의 내용과 법조문의 조항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법률이 근로기준법 몇 조에 규정되어 있는지를 두 변호사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게 현실에서는 가능할까요?
실제로 이런 일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법조인이라면 법조문을 다 외우고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변호사라고 말하면 “그 많은 법을 어떻게 다 암기하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기도 하죠.
그래서인지, 법정 드라마에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면이 바로 변호사가 법조문을 정확하게 암기해서 말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이상한 변호사”의 우영우 변호사처럼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 아주 예외적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법조문을 외우지 않습니다.
나. 법조인들이 법조문을 외우지 않는 이유
법조문을 외우지 않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법조문을 모두 외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굉장히 많은 법률이 있습니다.
사실 정확하게 몇 개의 법률이 있는 지도 모르지만 족히 수천 개는 될 겁니다.
민법, 형법처럼 널리 알려진 법률도 있지만, “1인 창조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 “결핵예방법”과 같이 덜 알려진 법률도 있습니다.
법률 개수만 많은 게 아니라 법률 안에 있는 법조문도 그 수가 매우 많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법률인 민법만 해도 1,118조까지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모든 법조문을 외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둘째, 굳이 법조문을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요즘은 검색의 시대입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듯이 변호사들도 일할 때 법률을 검색합니다.
변호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사이트로는 법제처의 “국가법령정보센터”와 법원의 “종합법률정보”가 있습니다. 실제로 변호사들이 일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드라마와 비슷하게, 직장 내 괴롭힘이 문제 된 사건을 맡으면 일단 근로기준법을 찾습니다.
그리고는 “지위” 등을 키워드로 해서 검색해서 해당되는 법조항을 찾는 겁니다.
인터넷만 접속할 수 있으면 쉽게 법률을 검색할 수 있는데, 굳이 법조문을 외우는 데 힘을 쓸 필요가 전혀 없죠.
법도 제대로 모르면서 변호사 일을 어떻게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법을 아는 것과 법조문을 외우는 건 전혀 다른 겁니다.
법조문을 외우는 건 단순 암기입니다. 그런데 변호사들이 하는 일은 단순한 법조문 암기가 아니라 그 법을 적용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불법행위에 관한 민법 제750조를 보겠습니다.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
민법 제750조는 매우 간단하게 규정되어 있는데, 법 조문만 봐서는 위법행위가 구체적으로 뭔지 손해라는 건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어떠한 경우에 민법 제750조가 적용되고 현실에서 이 법조문을 활용하여 권리를 구제받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게 변호사의 능력입니다. 그게 민법 제750조를 통째로 암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중요한 일이죠.
글을 마치기 전에 드라마에 나온 사소한 옥에 티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드라마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률이 “근로기준법 제76조 제2항”이라고 나오지만, “근로기준법 제76조 제2항”은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근로기준법 제76조의2”가 맞습니다.
제76조 다음에는 제77조가 나올 것 같지만, 근로기준법에는 제76조의2와 제76조의3이 있습니다.
이렇게 조문 뒤에 “2”, “3”과 같이 덧붙는 숫자를 ‘가지번호’라고 부르는데, 새롭게 법이 생길 때 흔히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법이 새로 생겨 법률 중간에 법조문을 추가해야 할 때 중간에 새로운 번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 이후의 법조문이 변경됩니다.
제76조 다음에 법조문이 1개 추가되어 신규 법조문을 제77조로 만들면 기존의 제77조는 제78조가 되고 그 뒤의 조항도 모두 바뀌죠. 법조문의 숫자를 하나씩 뒤로 미는 것도 가능하지만, 법조문의 숫자가 계속 바뀌면 혼란이 생길 수 있어 제76조의2와 같이 ‘가지번호’를 붙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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