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대법원은 임금피크제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이후 임금피크제에 대한 논쟁이 매우 뜨겁고 관련 소송도 상당히 많아졌죠.
임금피크제는 무엇이고, 어떤 점이 쟁점이었는지, 임금피크제에 대한 대법원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1. 임금피크제란?
임금피크제(賃金peak制)는 “근로자가 일정 연령에 도달한 이후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근로자의 임금을 조정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줄여서 ‘임피’라고 부르기도 하죠.
임금피크제는 고령화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도입된 것입니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장년(노년)인구를 활용할 필요성은 높아졌는데, 기존에 받던 임금을 그대로 지급하면 기업에 부담이 생길 수 있어 임금을 삭감하는 것입니다.
고용노둥부에 따르면 국내 전체 기업 중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의 비율은 22% 정도라고 합니다. 한편, 금융권은 임금피크제의 도입 비율이 높아 약 67%가 임금피크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임금피크제 관련 기사 보기
2. 임금피크제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임금피크제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임금피크제가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를 차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고령자고용법")은 합리적인 이유없이 근로자를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모집ㆍ채용 등에서의 연령차별 금지) ① 사업주는 다음 각 호의 분야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2.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 |
다르게 대우하는 게 항상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법은 ‘실질적 평등’을 지향하므로, 달리 대우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다르게 대우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문제는 “합리적인 이유”가 무엇인지에 가리는 것이죠.
임금피크제도 마찬가지라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여 운영할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고령자고용법 위반이 아니지만, 합리적 이유가 없으면 법률 위반이 되는 겁니다.
그럼 합리적 이유를 가리는 기준은 뭘까요?
3. 합리적인 차별인지를 가리는 기준은?
2022년 5월의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은 합리적 차별인지의 여부를 가리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설정한 것이죠.
대법원은 임금피크제가 유효한지에 대해 판단할 때, 다음과 같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 ①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이 타당한가?
- ②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이 적정한 수준인가?
- ③ 임금 삭감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 조치가 도입되어 있고 그 수준은 적정한가?
- ④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가?
위의 질문에 “예”라는 대답이 많을수록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임금피크제가 유효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반대로, “아니오”라는 대답이 많을수록 임금피크제는 무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법원이 기준을 제시했지만 이 기준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 열쇠는 아닙니다.
개별 사건으로 들어가면 각 기준을 충족하는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 판단을 하는 게 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불이익 수준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도 각자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죠.
한편, 이 판례는 A기술연구원에 근무하던 “갑” 직원에 관한 사안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A기술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봤는데,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임금피크제로 인해 감소되는 월 급여는 인사 평가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데, 감소되는 액수가 약 93만 원 ~ 약 283만 원에 달할 정도로 큽니다.
둘째, 임금 감소라는 불이익을 보전해 줄만한 다른 조치가 없었습니다.
셋째,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에 “갑”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갑”의 업무 내용이 임금피크제 도입 이전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4. 고령자고용법은 반드시 지켜야 하나?
가. 문제의 소재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해 회사와 근로자가 동의를 하면 괜찮을 걸까요?
양쪽이 합의를 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문제는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규정의 법적 성질이 강행규정인지, 아니면 임의규정인지와 연관됩니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데, 찬찬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나. 강행규정과 임의규정
법률 규정은 크게 강행규정과 임의규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강행규정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이고 강행규정에 위반하는 내용이 각 개인들이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그 계약은 무효라서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임차료(월세)을 인상할 수 있고 임대인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라고 계약을 맺었더라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약속은 차음증가에 관한 강행규정인 민법 제628조에 위반되어 무효이기 때문입니다(대법원 1992. 11. 24. 선고 92다31163, 31170 판결).
민법 제628조(차임증감청구권) 임대물에 대한 공과부담의 증감 기타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인하여 약정한 차임이 상당하지 아니하게 된 때에는 당사자는 장래에 대한 차임의 증감을 청구할 수 있다. |
그에 반해 임의규정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니, 법률과 다른 내용으로 각 개인들이 계약을 체결하면 그 계약이 우선합니다.
예를 들어, 민법 제689조는 위임계약을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임의규정이라서 위임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경우를 미리 정해두면 그때에만 계약해지가 가능합니다(대법원 2021. 4. 8. 선고 2017다286003 판결).
민법 제689조(위임의 상호해지의 자유) ①위임계약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 |
다. 임금피크제의 경우
다시 임금피크제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판례는 고령자고용법의 해당 규정이 “강행규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규정은 고용의 영역에서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여 헌법상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임금피크제 도입을 동의하는 내용으로 회사와 근로자가 개별적인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그 임금피크제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을 하고 있다면 강행규정 위반으로 무효가 됩니다.
즉,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규정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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