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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과 법/형사

비동의 간음죄란 무엇인가?

by 로도스로 2023. 6. 23.

2023년 1월 여성가족부는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법무부가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할 계획이 없다”라고 반박하자, 발표 9시간 만에 여성가족부는 발표 내용을 번복하였습니다.
 
여성가족부와 법무부의 서로 다른 입장에서 알 수 있듯이 비동의 간음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비동의 간음죄란 무엇이고, 논쟁이 치열한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비동의 간음죄란?

가. 논의의 배경

강간죄는 형법 제297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 형법 제297조(강간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297조가 강간죄를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경우로 정의하고 있으므로,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설령 강간 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면 강간죄로 처벌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이 비동의 간음죄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배경이 됩니다.
 
현행 형법에 따르면 강간죄가 인정되는 범위가 좁으니,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강간죄로 처벌되는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겁니다.
 

성폭력-안전실태-조사결과
성폭력 안전실태 조사 결

 
그렇다면, 판례는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요?
 
대법원 판례를 직접 살펴보겠습니다.
 

○ 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있었는지 여부는 그 폭행·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피해자가 성교 당시 처하였던 구체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며, 사후적으로 보아 피해자가 성교 이전에 범행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사력을 다하여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판례는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폭행 또는 협박의 범위를 비교적 넓게 인정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 법률안

그동안 현형 강간죄 규정을 변경하여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려는 입법적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백혜련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형법 개정 법률안을 살펴보겠습니다.
 

○ 형법 제297조(강간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사람을 간음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해당 법률안에 따르면,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사람들의 의사에 반해서 성관계를 가지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지니, 처벌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지게 됩니다.
 
 

2. 비동의 간음죄를 둘러싼 논란

가. 찬성론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찬성하는 쪽은 피해자 보호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강간죄가 보호하려는 법익(법적인 이익)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므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교하는 그 행위 자체가 이미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입니다.
 
찬성론자들은 사회적인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성이 “거절의 의사(NO)”를 표시해도 “거절(NO)”로 해석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기 때문에 자발적 동의에 기초하지 않은 성관계로 이어졌을 때에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나. 반대론

비동의 간음죄를 반대하는 측은 비동의 간음죄가 오히려 여성을 폄하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여성이 경험하는 모든 비동의적 성을 범죄화하는 것은 여성의 능력을 낮게 보는 과잉보호일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범죄 성립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삼는 경우, 범죄행위자의 처벌 여부가 전적으로 피해자의 의사에 좌우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성행위 당시에는 동의를 하였음에도 나중에 동의를 하지 않았다고 말을 번복하면 상대방이 처벌될 수 있다는 겁니다.
 
 

다. 법무부와 대법원(법원행정처)의 입장

법무부와 법원행정처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고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해외 입법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 입증책임 문제, 다른 성범죄 처벌규정과의 균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입법 여부를 고민해야 봐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3. 해외 사례

가. 미국

미국은 연방국가라서 주(州)마다 입법례가 다릅니다.
 
워싱턴 등의 일부 주는 피해자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에 대한 입증이 없어도 피해자의 동의가 없었음을 입증함으로써 성폭력범죄의 성립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텍사스 등은 피해자가 확정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때에는 성폭력범죄가 성립한다고 규정하면서도 동의가 없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강제력의 행사가 있었거나 피해자의 동의 능력이 없었음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캘리포니아 등은 비동의 간음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 영국, 독일, 프랑스

영국은 동의 유무를 성범죄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어, 동의가 없는 경우에는 성범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독일은 2016년 타인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행위 등을 하는 경우 이를 처벌하는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였습니다.
 
프랑스는 ‘폭행, 강제, 협박 또는 기망’에 의한 성적 삽입행위 또는 성적 침해를 처벌하고 있습니다.
 
 

다. 일본

일본은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폭행ㆍ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강간죄를 기본적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 해외 사례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검토보고서(2020. 7., 작성자: 전문위원 박철호)의 내용을 주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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