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형법정주의] 죄형법정주의의 5가지 세부원칙
죄형법정주의는 5가지의 세부원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법률주의, 소급효금지의 원칙, 명확성의 원칙, 유추해석금지의 원칙, 적정성의 원칙이 세부원칙인데,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므로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법률주의
범죄와 형벌은 성문의 ‘법률’에 의해서만 규정되어야 하는 것을 ‘법률주의’라고 합니다. 넓은 의미의 법(法)은 헌법, 법률, 명령 또는 규칙을 모두 포괄하는데, 이들 법은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으로 내려가는 위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법률주의에서 말하는 ‘법률’은 국회에서 제정한 형식적 의미의 법률을 의미하므로, 법률보다 하위의 규범인 명령이나 규칙으로 범죄와 형벌을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형사처벌에 관련된 모든 법규를 예외 없이 형식적 의미의 법률에 규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사회현상은 매우 복잡다단한데, 사회의 실상을 충분히 법률로 반영하기에는 국회의 전문적·기술적 능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 법원도 법률로 형벌을 규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예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특히 긴급한 필요가 있거나 미리 법률로써 자세히 정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하위규범에 위임을 할 수 있는데, 이때에도 상위규범인 법률이 처벌대상인 행위가 어떠한 것인지 이를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정하고, 형벌의 종류 및 그 상한과 폭을 명확히 규정하여야 합니다(【대법원 2000.10.27. 선고 2000도1007 판결】).
2. 소급효 금지의 원칙
범죄와 형벌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정하여야 하고 형벌 규정의 소급적 적용을 금지하는 것을 ‘소급효금지의 원칙’이라 합니다. 소급효금지의 원칙의 주된 목적은 법적 안정성의 확보입니다. 불확실성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하면 불안하지 않고 안정적인 상황을 좋아하는데, 형사적인 처벌을 가능하게 하는 형법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만약 소급효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서, 행위가 이루어지고 난 뒤에 사후적으로 이를 금지하는 형법규정을 만들어서 처벌을 한다면 법적 안정성을 크게 훼손될 것이고, 그만큼 국민들의 불안감도 커질 것입니다.
소급효금지의 원칙을 도식화하면 위의 그림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갑이 A라는 행위를 하였는데, 행위 당시에는 A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A행위를 처벌하는 B 법률이 나중에 생겼을 때, 법률이 제정되기 이전의 A행위에 대해 B 법률을 적용시키는 힘을 ‘소급효’라고 합니다. 이때 형벌의 소급효는 금지되므로, 갑에게는 B 법률이 적용될 수 없고, 결국 A행위를 이유로 갑을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3. 명확성의 원칙
범죄가 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위반했을 때 처벌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확성의 원칙’이라 합니다. 법은 여러 가지 상황을 모두 포괄해서 규율해야 하는 일반적인 규범이므로 법조문은 다소 추상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속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법규정의 내용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불명확하면 국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행위가 죄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되면 법을 적용하는 검찰 또는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서 처벌 여부가 결정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명확해야 할까요? 법원은 “통상의 판단능력을 가진 사람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헌법재판소 1992. 2. 25. 89헌가104】).
외국화폐의 거래에 대해서 규율하는 법규정 중에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었습니다.
“도박 기타 범죄 등 선량한 풍속 및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와 관련하여 거주자가 국내로부터 외국에 돈을 지급할 때에는 그 행위를 기재한 허가신청서를 제출하여 그 허가를 받아야 하고, 만일 위 허가를 받지 아니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때 문제가 된 것은 “도박 기타 범죄 등 선량한 풍속 및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라는 표현이었는데, 법원은 위 법규정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지 불명확하여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1998.06.18. 선고 97도2231 전원합의체 판결).
4. 유추해석금지의 원칙
법률가들이 주로 하는 일은 법률의 해석(解釋)입니다. 외국어도 아닌 법조문을 굳이 해석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행위가 법조문의 내용에 포함되는 것인지를 가리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사람의 주거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형법 제319조 제1항). 갑이 을의 허락 없이 을의 집 안방에 들어갔다면 주거침입죄에 해당함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만약 갑이 을의 집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면 어떨까요? 신체의 전부가 아닌 일부만 집 안으로 들어간 경우에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는지는 법조문에 나와 있지 않으므로 구체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해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대법원은 신체의 일부가 집 안으로 들어가도 주거침입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대법원 1995.9.15. 선고 94도2561 판결】).
한편 법률에 직접적인 규정이 없는 경우에 이와 유사한 법률 규정을 적용하는 것을 ‘유추해석’이라 하는데, 유추해석을 하지 말도록 하는 것을 ‘유추해석 금지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유추해석을 폭넓게 인정하면 처벌의 범위도 크게 증가하여 범법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갑이 집에 있는 을을 향해 크게 고함을 지르는 행위를 갑의 목소리가 을의 집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주거를 침입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유추해석이 되어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5. 적정성의 원칙
죄형법정주의를 근대 형법의 기본원리로 높이 받들고 있는 이유는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법률의 실직적인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형식만을 따지게 되면 오히려 법률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모순을 피하기 위하여 내용이 적정한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는 원칙을 ‘적정성의 원칙’이라 합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도 있지만, 법 중에서도 특히 형법은 사회적으로 반드시 금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 행위만을 금지해야 하고, 또한 처벌을 하더라도 범죄에 합당한 만큼만의 형벌을 가해야 합니다.
예전 형법 제304조는 혼인을 할 것처럼 여성을 속여 성관계를 가지면 혼인빙자간음죄에 해당하여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문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헌법재판소 2009. 11. 26. 2008헌바58】). 이에 따라 이 형법 조문은 2012년 12월 18일에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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