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감수성이란 무엇인가?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성인지 감수성이란 정확히 무슨 뜻인지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법률분야에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사건을 알아보고, 성인지 감수성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1. 성인지 감수성의 뜻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이라는 용어는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4차 UN여성대회에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의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일상생활 속에서 성별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과 불균형을 감지해 내는 민감성”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정책입안이나 공공예산 편성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화장실을 설치할 때 남녀의 화장실 이용 시간이나 이용 형태를 고려하여 화장실의 개수를 정하는 정책도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유튜브 영상 보기(아래 이미지 클릭)

법률 분야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는데, 주로 성희롱, 성폭력 등의 성범죄 관련 사건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건 2018년 대법원 판결입니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해당 사건은 대구의 한 사립대학 A교수가 여학생들을 상대로 수차례 성희롱 등을 했다는 이유로 해임되자 해임이 부당하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A교수의 주요 징계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학생이 A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뽀뽀해 주면 추천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말함
수업 중 질문을 하면 학생을 뒤에서 안는 듯한 포즈로 지도함
학생에게 “남자친구와 왜 사귀냐, 나랑 사귀자”, “나랑 손잡고 밥 먹으러 가고 데이트 가자”, “엄마를 소개해 달라”라고 하는 등 불쾌한 말을 함
복도에서 학생과 마주칠 때 얼굴에 손대기, 어깨동무, 허리에 손 두르기와 함께 손으로 엉덩이를 툭툭 치는 행위를 함

이 사건의 제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학생들의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학생들은 A교수로부터 성희롱을 당하고도 해당 교수의 수업을 수강하고 그에 대한 좋은 강의평가를 남겼는데, 그걸 보면 A교수가 그와 같은 성희롱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든 것이죠.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피해자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주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가 존재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 때문에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쉽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법률 분야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가지는 실질적 의미는 성범죄 관련 사건에 대해서 판단할 때에는 피해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고려는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용이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성범죄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특성이 있어 뚜렷한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는 때에는 피해자가 초기에 적절하게 대처하기도 쉽지 않은 때가 많은데, 피해자가 초기에 “피해자처럼 행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주장을 믿지 않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정의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합니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기준이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성범죄 관련 재판의 결과가 개별 판사의 감수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겁니다.

또한 별다른 물적 증거가 없더라도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피고인에게 유죄가 선고될 수 있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증거재판주의에도 반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대법원이 성범죄 재판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판단 기준으로 제시한 이후 1년 간 전국 각급 법원에서 이를 적용한 판결이 57건 중 단 한 건을 제외하고 모든 가해자가 유죄 취지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 논거로 제시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