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인 분쟁이 생겼을 때, 소송을 거치지 않고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합의로 문제를 종결짓기로 한 뒤에 상대방이 마음을 바꿔 소송을 제기하는 걸 막기 위해 부제소 합의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부제소 합의란 정확히 무엇이고, 부제소 합의가 유효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 부제소 합의란?
가. 개념
부제소 합의(不提訴 合意)란 법원에 소송 등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를 말합니다.
부제소 합의는 부제소 특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나. 예시 문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부제소 합의의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양 당사자는 2023. X. X. 본 건 분쟁에 대해 원만하게 합의하였음을 확인한다. |
② 향후 본 건 분쟁과 관련하여 일체의 문제제기(민사 소송의 제기, 고소∙고발 등의 형사적인 절차의 진행, 행정관청 등에 대한 신고를 포함하여 이에 한정되지 않는다)를 하지 않는다. |
다. 효력
부제소 합의를 한 뒤 이를 어기는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부제소 합의를 하고도 소를 제기하면 원칙적으로 소의 이익이 없어 “각하” 판결을 합니다.
각하와 기각은 소송을 제기한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각하(却下) 판결은 소송이 갖춰야 할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소송을 종료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기각(棄却)은 소송을 제기한 절차는 적법하지만 그 내용이 실체적으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배척하는 것을 말합니다.
2. 유효요건
법적인 분쟁이 생기면 이걸 해결하기 위해 재판을 청구할 수 있고, 이와 같은 재판청구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입니다.
그런데 부제소 합의를 통해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건 소송당사자에게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을 포기시키는 행위로 중대한 소송법상의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부제소 합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판단에 따라서 당사자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으므로, 그 판단을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판례는 명시적인 합의서도 없고 당사자의 의사가 불분명하다면 부제소 합의의 존재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부제소 합의가 유효하기 위한 요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9. 8. 14. 선고 2017다217151 판결).
첫째, 당사자가 처분할 수 있는 “특정한 법률관계”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특정한 사안에 대한 합의는 가능하지만, 모든 사안에 대한 포괄적인 합의는 무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합의 당시 “당사자가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달리 말해, 합의 당시에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는 부제소 합의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합의 과정에서 의사 표시의 하자가 없어야 합니다.
즉, 사기, 강박 등에 의한 부제소 합의는 의사표시의 하자를 이유로 취소하거나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 의사표시의 하자 관련 글 보기
넷째, 부제소 합의는 강행법규에 위반되지 않아야 합니다.
강행법규는 임의법규에 대비되는 개념인데, 양 당사자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법에서 정한 대로 그대로 지켜야 하는 법규를 말합니다.
3. 구체적인 사례
가. 불법행위로 인한 추가 손해
(1) 원칙
법에서 금지한 행위(불법행위)를 하여 상대방에게 손해를 발생시키면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교통사고를 일으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했을 때 손해를 배상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에 관하여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피해자가 일정한 금액을 지급받고 그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기로 합의가 이뤄지면 그 후 그 이상의 손해가 발생하였더라도 다시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합의를 할 때에는 향후의 상황을 예측하고 발생할 수 있는 손해를 미리 가늠하여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예외
하지만 아무리 신중을 다해 합의를 하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이미 합의를 했으니 더 이상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피해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제소 합의를 했더라도 다음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추가적인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합의가 이루어짐
- 후발손해(추가 손해)가 합의 당시의 사정으로 보아 예상이 불가능한 것이었음
- 당사자가 후발손해(추가 손해)를 예상했다면 사회통념상(상식적으로) 그 합의금액으로는 합의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됨
(3) 구체적인 사례(대법원 2001. 9. 4. 선고 2001다9496 판결)
[사실관계]
- 교통사고로 심한 뇌손상을 입고 식물인간 및 사지마비 상태가 된 피해자의 여명이 사고 시로부터 약 6년 2개월 정도로 예측된다는 감정결과 나옴
- 가해자와 피해자는 감정결과를 기초로 하여 피해자가 일정한 금액을 수령하고 위 사고로 인한 일체의 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합의함
- 그 후 피해자가 여명기간이 지나서도 계속 생존함에 따라 다시 감정해 본 결과, 증상이 호전되어 피해자의 여명이 종전의 예측에 비하여 약 8년 3개월이나 더 연장될 것으로 나옴
[법원의 판단]
- 피해자는 최초 합의 당시에 향후치료, 보조구 및 개호 등이 추가적으로 필요하게 된 중대한 손해가 새로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었고 이를 예상하였더라면 최초 합의금액으로는 합의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후발손해(추가 손해)에 대하여는 최초 합의의 효력이 미치지 않음
나. 퇴직금의 사전 포기
퇴직금은 사용자가 일정기간을 계속근로하고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그 계속근로에 대한 대가로서 지급하는 후불적 임금의 성질을 띤 금원(돈)입니다.
구체적인 퇴직금청구권은 근로가 끝나고 “퇴직”행위가 발생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종 퇴직 시 발생하는 퇴직금청구권을 사전에 미리 포기하거나 사전에 그에 관한 민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부제소특약을 하는 것은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어 무효입니다(대법원 1998. 3. 27. 선고 97다49732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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