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기 씨는 MBC 15기 공채 탤런트로 1982년에 데뷔하였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주로 조연으로 활동하였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크게 활약하였고, 예능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음반도 발매했습니다.
조형기 씨는 푸근한 아저씨 이미지와 화려한 입담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과거에 저지른 범죄가 밝혀지면서 연예계 활동을 접어야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조형기 뺑소니 사건 관련 영상 바로 보기(아래 이미지 클릭)
1. 무슨 일이 있었나?
사건이 발생한 건 1991년 8월입니다. 조형기 씨는 국방부 홍보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강원도 정선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사건 발생 전날 저녁, 조형기 씨는 영화 스태프들과 회식을 하였는데, 술을 워낙 많이 마셔서 여관을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전날에 시작된 음주는 다음날까지도 이어졌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술을 마셔 만취한 상태였는데도 조형기 씨는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밤이었고 비까지 내리는 상황에서 음주운전을 한 것이죠.
조형기 씨는 도로 옆을 지나가던 피해자를 발견하지 못했고, 승용차의 우측 앞 부분으로 피해자를 들이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고로 피해자는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2. 조형기 씨의 주장
가. 피해자 유기는 안 했다?
검찰은 조형기 씨를 “특정범죄가중법” 위반으로 기소하였습니다. 조형기 씨가 교통사고를 일으킨 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길에 쓰러져 있던 피해자를 언덕 아래 수풀에 옮겨서 유기한 뒤에
그대로 도주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입니다.
음주 및 뺑소니로 형사재판을 받게 된 조형기 씨는 재판 과정에서 놀라운 주장을 합니다. 교통사고를 내서 피해자를 친 건 맞지만 피해자를 유기하고 도주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주장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이 그렇게 판단한 첫 번째 근거는 조형기 씨 본인의 진술입니다. 조형기 씨는 검찰 조사에서 “사람을 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뒤에 차를 세웠다”라고 말했는데, 이건 피해자 유기를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객관적인 증거도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이후 조형기 씨의 오른쪽 손목과 우측 반바지에 피가 묻어 있었는데, 본인은 교통사고로 피를 흘릴 정도로 상처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조형기 씨가 피해자를 옮겨서 유기하지 않았다면, 조형기 씨의 몸에 피가 묻었을 리가 없습니다. 또한 승용차 전조등에 묻어 있는 피와 조형기 씨의 옷에 묻은 피는 모두 O형이었는데, 피해자의 혈액형도 O형이었습니다.
나. 술에 취했으니 심신상실?
(1) 심신상실과 심신미약
조형기 씨는 “심신상실”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형법 제10조에 따를 때 심신상실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는 아예 처벌을 하지 않고, 심신미약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는 약하게 처벌할 수 있습니다.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①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개정 2018. 12. 18.>
③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심신상실이라는 건 정상적인 판단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고, 심신미약은 심상상실까지는 아니지만 판단능력이 부족한 걸 의미합니다.
(2) 제1심 법원의 판결
제1심 법원은, 조형기 씨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러서 심신미약이라 보고 형을 감경해서 징역 3년을 선고하였습니다.
제1심에서 심신미약을 인정받았지만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한 조형기 씨는 항소를 제기했습니다. 술에 만취한 인사불성의 상태에서 일어난 사고이고, 심신상실 상황이었으니 아예 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죠.
(3) 제2심 법원 및 대법원의 판결
2심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2심 법원도 조형기 씨가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경찰은 사고 발생으로부터 약 7시간이 지나서 음주측정을 했는데, 그 때도 조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26%로 만취상태였습니다. 이걸 보면,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피해자를 유기할 때,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부족했을 것이라고 본 겁니다.
하지만, 제2심 법원은 심신미약을 이유로 조형기 씨를 약하게 처벌하는 건 안 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술에 만취해서 범죄를 저지르면 심신미약으로 처벌을 약하게 받고, 술에 덜 취해서 범죄를 저지르면 더 강하게 처벌을 받는데, 이건 매우 불합리하기 때문입니다. 술을 마실 때에 이미 음주운전을 할 생각이 있었으면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니,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처벌을 약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조형기 씨는 사고 전날에도 음주운전을 하며 숙소와 식당을 오간 적이 있고, 사고 당일에도 차를 대기시킨 상태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이걸 보면 술을 마실 때부터 음주운전을 할 의사가 있었던 걸 알 수 있고, 이런 경우에는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경을 할 수 없다고 제2심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대법원에서도 유지되었습니다.
(4)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사실 조형기 씨 판결은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예전부터 매우 유명한 판례였습니다.
형법 교과서에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조 씨의 판결이 이 개념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actio liberain causa)라는 건, 일상적으로 잘 쓰지 않는 법률용어인데요, 정상적인 심리상태의 행위자가 스스로를 심신미약 상태에 빠지게 한 후 이러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걸 말합니다.
심신미약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는 약하게 처벌할 수 있지만, 심신미약의 상태(원인)를 스스로 만들었다면 그건 본인의 책임이니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이 이뤄져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사람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맨 정신으로 하기 힘들 것 같아 술을 마신 경우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겁니다.
4. 대법원 판결과 그 이후
가. 대법원 판결
대법원의 판단은 제2심 법원의 결론과 비슷했지만,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습니다.
파기환송은 2심 판결에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에 2심 판결을 깨고(파기하고) 다시 재판하라고 돌려보내는(환송) 걸 말합니다.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한 이유는 검찰이 유죄의 근거로 삼은 법률이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결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2심 법원은 조형기 씨가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3 제2항 제1호 위반이라고 판단했는데, 2심 판결 선고 후에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률이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한 건 해당 법률조항의 처벌이 과도하기 때문입니다. 기존 법률에 따를 때, 뺑소니 사고를 내서 사람을 죽게 만들면,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데, 이건 살인죄의 법정형인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보다 더 처벌이 강한 겁니다.
법령 | 개정 전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3 (도주차량운전자의 가중처벌) | 형법 제250조(살인, 존속살해) |
내용 | ②사고운전자가 피해자를 사고장소로부터 옮겨 유기하고 도주한 때에는 다음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1. 피해자를 치사하고 도주하거나 도주후에 피해자가 사망한 때에는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
①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
뺑소니 사고가 아무리 흉악한 범죄라고 해도 살인죄보다 더 세게 처벌할 수 없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었죠. 헌재의 위헌 결정 뒤에 특정범죄가중법이 개정되었고 현재는 살인죄와 법정형이 같아졌습니다.
법령 | 개정 "전"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3 (도주차량운전자의 가중처벌) | 개정 "후"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3 (도주차량운전자의 가중처벌) |
내용 | ②사고운전자가 피해자를 사고장소로부터 옮겨 유기하고 도주한 때에는 다음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1. 피해자를 치사하고 도주하거나 도주후에 피해자가 사망한 때에는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
②사고운전자가 피해자를 사고장소로부터 옮겨 유기하고 도주한 때에는 다음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개정 1995.8.4> 1. 피해자를 치사하고 도주하거나 도주후에 피해자가 사망한 때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
나. 최종 판결
법률이 위헌 결정이 되었다는 이유로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하였으니, 서울고등법원은 다시 재판을 했습니다. 파기환송 이후의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널리 공개되지는 않았는데, 최근 언론기사에 따르면 징역 2년, 집행유에 3년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조형기 씨가 피해자 측과 합의를 하였고, 과거의 사건을 지금의 잣대로 판단하는 건 어려운 일지만, 음주운전을 해서 사람을 죽게 만들고 뺑소니에 피해자 유기까지 했는데, 집행유예를 받은 건 너무 약하게 처벌한 건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5. 요약 및 정리
- 조형기 씨는 1991년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쳐서 죽게 만들었고, 피해자를 유기한 뒤 도주하였습니다.
- 그는 술에 만취한 심신상실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라서 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 법원은 조 씨 스스로 술을 마셨고 음주운전을 예상할 수 있었으므로 술에 취한 상태라는 이유로 아예 처벌하지 않거나 약하게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 참고자료
- 서울고등법원 91노5029
- 대법원 92도999
'연예가 법정 > 뉴스 보는 법(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호법이란 무엇인가? (2) | 2024.04.22 |
---|---|
양곡법(양곡관리법)이란 무엇인가? (0) | 2024.04.21 |
의결정족수 뜻과 국회의 의결정족수 (0) | 2024.04.16 |
채상병 특검법이란 무엇인가? (0) | 2024.03.15 |
독직폭행 뜻과 정진웅 검사 독직폭행 사건 (0) | 2024.03.13 |
댓글